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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가난한 애인/ 최문자 본문
가난한 애인
최문자
45년 전
애인은 가난했다
자꾸 손을 씻었다
잠깐, 잠깐만이라도
하면서 빨랫비누로 가난한 지문을 지웠다
애인은 혼자 쓰러지지 않았다
가난을 데리고
나를 데리고
하루 종일 통이 넓은 가난을 끌고 다녔다
보리빵 조각을 나눠 먹고
훌쭉한 뼈가 지리면
가난은 얼굴이 되었다
40년 훌쩍 지나
가난은 이제 지친 것 같다
죽어가는 아무것도 구원하지 않았다
뼈를 뿌렸던 백령도로 가는 파도 위에
시집 한 권
말랑한 보리빵 세 개
겉봉도 쓰지 않고 던졌다
애인은 이제 손을 씻지 않는다
너무 많이 만져본 둥그런 빵조각도 놓친다
툭 툭 다 떨어뜨렸다
진눈깨비가 함부로 울려고 했다
안녕, 애인
아무 데나 뿌리 내리고 우거졌던
가난한 나의 빵조각들
쏴쏴, 바닷 속 시집 페이지가 넘어갔다
—《열린시학》2016년 봄호
최문자 시인 / 서울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박사. 협성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제6대 협성대학교 총장. 2008년 제3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2009년 제1회 한송문학상 수상.
시집 『귀 안에 슬픈 말 있네』『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울음소리 작아지다』『나무고아원』『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사과 사이사이 새』『파의 목소리』. 시선집 『닿고 싶은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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