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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꽃의 블랙홀/ 김길나

시낭송행복플러스 2016. 8. 24. 07:44



꽃의 블랙홀

 

  김길나

 

 

나는 귀를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입 없는 그가 입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전복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 입이 말하는 걸 들었다

혁명을 꿈꾸는 돌연변이가 변질시킨 식충

식물류의 종족,

그에게서 분출되는 색광은 붉은빛

그 긴 파장에서 섬세하게 흘러넘치는 광파는 황홀

먹기 위해 끌어당기는 마력과

마력에 매몰되는 죽음의 불꽃이 맞붙었다

사멸과 생성을 돌려대고 갈아엎는 통로를

입에서 꽃이, 꽃에서 입이 피어나는 에로틱한 구멍을

꽃의 바깥, 외계에서 누가 들여다보고 있다

지상에서는 꽃잎 한 장에서 폭발하는 별이 자주

눈물로 반짝이고, 잎에서 회오리치는 바람은 드셌다

꽃잎 위로 포개지는 꽃잎들 틈새에서 요동하는 구름,

구름이 감추고 있는 번개,

낱낱의 꽃잎이 제 블랙홀을 덮어 숨기는 비경을

꽃의 바깥, 외계에서 어느 기호가가 기록 중에 있다

 

심미의 늪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시간이 오고

꽃의 중력에 붙들린 거기, 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생애가 단숨에 날아가고

존재를 부수는 시공의 열렬한 소용돌이 속에

조각난 조각의 조각들을, 끝끝내

시간이 멈추는 경계까지 밀어붙이고

그리고는 깜깜한 침묵이다

저녁이 오고, 닫힌 끝과 열린 끝이 주고받는 침묵이

짙은 어둠으로 내려 꽃의 입을 덮는다

 


   

         ㅡ시집(『시간의 천국』시작시인선, 2016)




김길나 시인 / 전남 순천 출생. 1995년 시집『새벽날개』로 등단. 《문학과 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빠지지 않는 반지』『둥근 밀떡에서 뜨는 해』『홀소리 여행』『일탈의 순간』『시간의 천국』, 산문집『잃어버린 꽃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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