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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조각보 연대기/ 박미라

시낭송행복플러스 2016. 12. 21. 15:37



조각보 연대기

 

    박미라

 

      

이것은 어떤 감옥의 평면도이다

꽃이었다가 물이었다가 타오르거나 가라앉는

모서리들의 힘으로 간혹 눈부시다

 

빈틈없이 맞물린 도형들 사이를 비집어

붉은 모란 한 송이를 꽂는다

향기 없는 꽃인 걸 잠깐씩 잊으며

노랑 옆에 초록을 두는 진부한 속임수

스물이, 마흔이, 노랑빨강파랑이,

 

저 눈부신 것들이 꾸려가는 감옥의 나날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반복이 문득 끊기는 귀퉁이

모란은 자라서 가시나무가 되고

 

감추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갇혔다는 걸 알 때쯤

이 평면도의 출입구는 봉쇄될 것이다

 

도대체! 조각보 한 장에 다 들어가는 일생이라니

 


     —시집『이것은 어떤 감옥의 평면도이다』(종려나무시선, 2016)



박미라 / 1996년 〈대전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시집『서 있는 바람을 만나고 싶다』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안개 부족』『우리 집에 왜 왔니?』『이것은 어떤 감옥의 평면도이다』,

수필집『그리운 것은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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