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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본문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김상미
당신은 블루베리를 더 좋아하고
나는 크랜베리를 더 좋아해요
요정의 심장같이 붉은
붉은 색은 언제나 나를 자극시켜요
자꾸만 더 멀리 가자고 속삭여요
때로는 그 속삭임에 두말 않고 복종해
아주 멀리 가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나 당신 곁으로 다시 돌아와요
비록 당신이 하트 크레인*의 시에 크랜베리 와인을 타 마시는 나를 언짢아해도
나는 당신이 블루베리 와인을 마시며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게
전혀 신경 쓰이지 않거든요
어차피 문학이란 문학적 테크닉과 탐구에 탁월한 작가보다는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을 찢어진 우산 하나로 버티다 쓰러지는 시인에게
더 쓰라린 법이니까요
당신이 아무리 크랜베리보다 블루베리를 더 좋아해도
당신은 내 취향이 아니야, 라고 말한 적 한 번도 없듯이
나는 사람들의 취향이 제각각인 게 참 좋아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무너진 세상을 견디고 이 확신 없는 세상을 참아내겠어요
나는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방어벽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비극도 환상으로 무마할 수 있고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그러니 우리 아무 말 말고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그 사이만큼만 서로를 사랑하고 즐겨요
얼룩투성이 심연 같은 긴 이별, 짧은 편지*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잘 익어가는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마음놓고 우리들 취향대로 아주 작은 왕국을 만들어요
두 켤레 신발이 뜨거운 햇볕 아래 반짝이는!
————
* 하트 크레인 : 33세에 자살한 미국 시인.
* 긴 이별, 짧은 편지 :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의 자전적 소설.
—시집『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문학동네, 2017)
김상미 /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잡히지 않는 나비』『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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