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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노숙의 일가친척/김승희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노숙의 일가친척/김승희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5. 22. 09:39



노숙의 일가친척

 

   김승희

 

 

해골의 윤곽이 그려진 초안에

밤이 내리면

꽃들도 꽃잎을 접고 노숙할 준비를 하고

나무들도 날개를 접고 노숙을 하고

새들도

묘지도 노숙을 하고

강과 하늘이 서로 거울이 되는 양

별들도 강물 안에 노숙을 하러 멀리서 내려온다

아름다운 것들은 다 노숙을 한다

 

노숙을 하는 묘지의 별 위로

노숙을 하는 새들이 잠시 새벽을 스치고

이슬이 몸을 털고 일어나는 아침

질경이 달개비 민들레들아

너희들도 함께 노숙을 했구나

무비자 속에 비자가 있고

무조건 속에 조건이 있고

무연고 속에 연고가 있듯이

노숙이 노숙을 위로하는구나

 

노숙의 일가친척들을 거느리고

오늘밤이 또 묘지 곁으로 무한 속으로 나온다

 

 

 

                    —《시와 표현》2017년 4월호




김승희 / 1952년 光州 출생.  1973년 〈경향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 시집 『태양 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미완성을 위한 연가』『달걀 속의 생』『어떻게 밖으로 나갈까』『냄비는 둥둥』『희망이 외롭다』등.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