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물이 끓는 시간/손병걸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물이 끓는 시간/손병걸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6. 29. 08:18



물이 끓는 시간

 

   손병걸

 

 

 

틈이란 틈을 다 비집고 날아오르는

커피포트 속 물소리처럼

모든 날갯짓은 다 뜨거운 걸까

 

시력을 잃고 엎질러진 물처럼

내 생이 밑바닥 밑바닥으로 스미는 동안

오래전 몸속에서 식은 시간이 끓어오른다

 

가벼움과 무거움은 하늘과 땅 사이

그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고

투명한 벽은 점점 더 두께를 키웠을까

 

뜨겁고 서늘함이 한바탕 뒤엉키며

고인 시간이 비등점에 이를 즈음

커다란 날개 한 쌍이 활짝 펴진다

 

적절한 온도의 바람이 불고

모든 틈이 사라진 여기가 바로

내가 간절히 원한 절정

그러나 지금은 잠시

펼쳐진 날개를 접어야 할 때

 

커피포트의 전원을 끄고

벌어진 생각을 메우듯

스물 네 시간 쉬지 않을 내 몸에 전원을 켠다

 

 

 

         —《시와 정신》2017년 여름호




손병걸 / 1967년 동해 망상 출생. 대관령종합고 졸업.  1997년 중도 실명으로 시각장애 1급 판정 받음. 2005년 〈부산일보〉신춘문예 가작 입선.  시집 『푸른 신호등』『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통증을 켜다』. 2013년 경희사이버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과 석사 졸업.


'아름다운 시편들 > 명시.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렵(川獵)/이병일  (0) 2017.06.29
작약/김선재  (0) 2017.06.29
고독한 근육/류근  (0) 2017.06.18
북양항로北洋航路 /오세영  (0) 2017.06.15
천지를 다 기울여 매화가/정현종  (0) 2017.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