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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작약/김선재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6. 29. 08:20



작약

  

 김선재

 


 

우리는 각자의 구름을 이고 먼 곳을 보고 있었지


등 뒤에는

정적 같은 꽃들이

손을 떠난 말들이


모서리를 굴리고 굴린 모서리를 다시 가장자리로 밀어내며


손바닥을 펼치면 내일의 날씨를 알 수 있을까


소매를 걷어 올리는 계절마다 두 손에 얼굴을 묻었지

먼 곳을 잘 보기 위해

끝과 시작을 뒤바꾸기 위해

뒤바뀐 것을 되돌리기 위해


겹겹이 둘러싸 안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들어가려고 하고

너는 무게 없이 부풀어

끝내 발밑에 뒹구는 오늘


그렇게, 그래서, 그래도, 우린 살겠지


귀를 잃어버린 건 아니니까

입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신발을 돌려놓았다

이제 없는 우리를 위해

과녁을 비껴간 화살처럼 빛나던

어제를 향해


꽃들은 각자의 구름을 끌고 문밖으로 걸어간다


손바닥을 뒤집으니


마당이 고요해졌다

 

 

                  

                —《현대시학》2017년 6월호

 


김선재 / 1971년 경남 통영 출생. 2006년《실천문학》소설, 2007년《현대문학》시로 등단. 소설집『그녀가 보인다』『내 이름은 술래』. 시집『얼룩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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