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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나의 비애/ 황학주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9. 13. 17:04



나의 비애

  

   황학주

 

   

사랑보다 더 늙은

몸이라는 비애를 만지며

금곡리 저자거리의 저녁이 되어가네

퇴근길에 가을비 넘어가는

나의 비애로 제해야 하는 가을이

없는 길을 끝내 가게 하면

내 사랑 감출 곳이 없네

죽산품과 젓갈류, 채소전들 사이

시장에 쌓인 고향들을

하나씩 입속에 굴려보며

팔려간 고향이 되어 객지와 살고 있으니

고향을 의심하는 나는 외롭네

눈만 남은 사람처럼 마르네

2단 협립우산을 든

비애가 신문지로 싼 찐빵을 끼고

잠시 전봇대 뒤로 사라지네

모든 것의 타향 쪽으로 가지 않으면

나는 더욱 어두워질 것 같은데

한 치 앞을 모르는 상처 속에 사랑이 있으니

사랑은 끝없네

비 맞은 비애

길을 찾을 수 없는 날의 저녁이

또 하나 쏜살같이 지나가네



     —황학주 시선집『행복했었다는 말』(발견, 2017)




황학주 / 1954년 光州 출생. 1987년 시집 『사람』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함』『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너무나 얇은 生의 담요』『루시』『저녁의 연인들』『노랑꼬리 연』『某月某日의 별자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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