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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닮은 아침/박연준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시가 있는 하루

아침을 닮은 아침/박연준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0. 31. 14:10



박연준의 「아침을 닮은 아침」감상 / 박성우

 

 

아침을 닮은 아침

 

  박연준

 

 



지하철 환승게이트로 몰려가는 인파에 섞여

눈먼 나귀처럼 걷다가

 

귀신을 보았다

저기 잠시 비껴 서 있는 자

허공에 조용히 숨은 자

무릎이 해진 바지와 신발한 머리를 하고

어깨와 등과 다리를 잊고 마침내

얼굴마저 잊은 듯 표정 없이 서 있는 자

 

모두들 이쪽에서 저쪽으로

환승을 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는 소리를 빼앗긴 비처럼

비였던

비처럼

빗금으로 멈춰 서 있었다

 

오늘은 기다란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며

지금은 잊은 게 아닐까

  

우리의 걸음엔 부러진 발목과

진실이 빠져 있는 게 아닐까

 

한 마디쯤 멀리 선 귀신을 뒤로하고

개찰구를 통과하는 눈먼 귀신들

 

오늘 아침엔 아무도 서로를 못 본 채

모두가 귀신이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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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걸으려 하지 않아도 떠밀려 걷게 되는 출근길 지하철. 환승역에서 우르르 쏠려가다 보면 일순간 우리 모두는 “얼굴마저 잊은 듯 표정 없이 서 있는 자”가 되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안간힘으로 모두를 보았지만 아무도 서로를 못 본 사람이 되고, 안간힘으로 모두를 만났지만 아무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 되어 저마다 총총 사라지지요. 

 

  박성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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