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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푸른 해 김영산 푸른 해 푸른 해 라고 부르면 푸른 해가 된다 너도 푸른 해 나도 푸른 해 우리 모두 푸른 해 푸른 해 푸른 해 하고 부르지 않아도 푸른 해가 된다 푸른 해라고 부르지 않아도 푸른 해 분명한 사건 하나는 우리가 푸른 해 사건 하나는 사건 둘 사건 셋 푸른 해 하나가 생기면 푸른 해 여럿이 그 주위를 돌고 돈다 우리는 푸른 해 주위를 돌고 돈다 하나의 사건이 생겨나는 것처럼 푸른 해가 생겨나는 것처럼 푸른 해가 생겨나고 그 푸른 해 주위를 푸른 해들이 돌고 돈다 ⸻월간 《현대시》 2021년 2월호 ------------------ 김영산 / 1963년 전남 나주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박사 수료. 1990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冬至』 『평일』 『벽화』 『게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여름의 돌 이근석 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는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번져있어, 우리가 미래로 가져가자,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
씨앗을 받아들고 이기철 씨앗에서 열매까지의 길을 어린 나무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 와 세상이 조그마해지면 나는 전기밥솥에 쌀을 안쳐놓고 그 위에 녹두콩 완두콩도 두어 개 띄워놓고 솥이 제 몫의 일을 하는 동안 좋은 세상이 어디쯤까지 와 머무는지 알아보러 동구 밖으로 나가보리라 샐비어 잎에 새똥이 마르고 도랑물소리가 발목에 감기리라 밤에는 흰 노트를 펼쳐놓고 내 지은 죄의 목록을 흑연으로 기록하리라 분노 한 사발, 증오 한 그릇, 사랑 한 대접, 노래 한 다발 그리고 부질없이 펴놓은 세상일들을 출석부의 이름 부르듯 불러들이리라 한랭 겨울, 흰 눈이 하는 일을 내 손이 맡으리라 손가락이 곱으리라, 마음이 헝겊처럼 펄럭이리라 ⸺계간 《시와 시학》 2020년 겨울호 ------------ 이..
봄꽃 진 뒤 여기저기 뒹구는 고막(鼓膜)들. 바람은 빵을 베어 물고 달린다. 너는 청동 의 말과 함께 돌아온다. 너는 가난한 화부(火夫)가 놓친 불의 작은 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기쁨이다. 너는 모래와 금속 알갱이가 아니다. 너는 부드러운 맥박을 가진 양이나 초원에 내리 꽂히는 벼락, 꽃과 꽃 위로 날며 노래하는 백합, 수풀 위에서 빛나는 쓸모없는 금, 아름다운 배[船], 부레, 속삭임, 너는 궁핍과 궤양에서 태어나 한없이 가벼운 눈[雪]의 일생을 산다. ⸺시 전문 계간 《딩아돌하》 2020년 여름호 ------------ 장석주 / 1955년 충남 논산 출생.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오랫동안』 『몽해항로』 『일요일과 나쁜 날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