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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스크랩] 그의 반(半)/정지용

시낭송행복플러스 2019. 1. 14. 17:24

그의 반(半)


  정지용



 

내 무엇이라고 이름하리 그를 ?

나의 영혼 안의 고운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

쪽빛 하늘에 흰 꽃을 달은 고산식물,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 돌아간 시름의 황혼(黃昏)길 위 --

--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임을 고히 지니고 걷노라.



  ㅡ(시문학 3호, 1931.10)

 



정지용/ 1902년 5월 15일 충북 옥천 출생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시절,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半日) 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 일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유학 시절에는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 등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귀국 후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일했다. 1930년에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서 활동했고, 1939년에는 《문장》의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의 행적에 여러 설이 있으나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 : 한국명시낭송예술인연합회
글쓴이 : 이서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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