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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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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주제별 좋은시

[스크랩] 추석 - 한가위 (시/ 구상)외

시낭송행복플러스 2013. 9. 2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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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구상

 

어머니
마지막 하직할 때
당신의 연세보다도
이제 불초 제가 나이를 더 먹고
아버지 돌아가실 무렵보다도
머리와 수염이 더 세었답니다


어머니
신부(神父) 형이 공산당에게 납치된 뒤는
대녀(代女) 요안나 집에 의탁하고 계시다
세상을 떠나셨다는데
관(棺)에나 모셨는지, 무덤이나 지었는지
산소도 헤아릴 길 없으매
더더욱 애절합니다

어머니
오늘은 중추 한가위,
성묘를 간다고 백 만 시민이
서울을 비우고 떠났다는데
일본서 중공서 성묘단이 왔다는데
저는 아침에 연미사(煉彌撒)만을 드리곤
이렇듯 서재 창가에 멍하니 앉아서
북으로 흘러가는 구름만 쳐다봅니다

어머니
어머니

 

 


한가위/ 최광림


어머니,
오늘은
당신의 치마폭에서 달이 뜨는 날입니다

아스라한 황톳길을 돌아
대 바람에 실려온 길 잃은 별들도
툇마루에 부서지는 그런 날입니다

밀랍처럼 곱기만 한 햇살과
저렇듯 해산달이 부푼 것도
당신이 살점 떼어 내건 등불인 까닭입니다

새벽이슬 따 담은
정안수 한 사발로도
차례 상은 그저 경건한 풍요로움입니다

돌탑을 쌓듯
깊게 패인 이랑마다
일흔 해 서리꽃 피워내신 신앙 같은 어머니,


다만 살아온 날 만큼
당신의 고운 치마폭에
두 무릎 꿇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눈물 비친 웃음 한 소절
입김으로 펄펄 날리며
모두가 오래도록 그랬음 정말 좋겠습니다
    

 


한가위의 오늘 밤/ 박목월

 

달을 보며 생각한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한가위의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들.

 

한라산 기슭에도

태백산 골짜기 두메 산골에도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 어린이들.


몇 명이나 될까

헤아릴 순 없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 어린이들.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달빛에 빛나는 하얀 이마

달빛에 빛나는 까만 눈동자


모르는 그 누구도

달을 보면서

오늘 밤 달을 보는

나를 생각할까.


모르는 그 누구도

달을 보면서

오늘 밤 달을 보는 내게로

따뜻한 마음의 손을 내밀까.


그야 모르지

그야 모르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모든 어린이들이

어쩐지 정답게 느껴진다.


언제 만날지

어떻게 사귀게 될지

그야 모르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나는 따뜻한 마음의 손을

서로 잡고 있는 것 같다.

 

 

 

추석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때/ 서정주

 

추석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

저 달빛에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추석/ 오상순

 

추석이 임박해 오나이다

어머니!

그윽한 저----

비밀의 나라에서

걸어오시는 어머니의

고운 발자국소리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듯 하오이다

 

            

 

추석/ 이성복

 

밤하늘 하도 푸르러
선돌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쳐대 빨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번 끼얹고

하염없는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또 가고 싶으면 다시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밤/ 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추석달을 보며/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 달은

백동전 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추석/ 유자효

 

나이 쉰이 되어도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


철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

어머니, 아버지.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깊은 밤.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

            

 

 

추석/ 유용주

 

 

빈집 뒤 대밭 못미처

봐주는 사람 없는 채마밭 가

감나무 몇 그루 찢어지게 열렸다

숨막히게 매달리고 싶었던 여름과

악착같이 꽃피우고 싶었던 지난 봄날들이

대나무 받침대 세울 정도로 열매 맺었다

뺨에 붙은 밥풀을 뜯어먹으며

괴로워했던 흥보의 마음,

너무 많은 열매는 가지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거적때기 밤이슬 맞으며

틈나는 대로 아내는 꽃을 피우고 싶어했다

소슬한 바람에도 그만 거둬 먹이지 못해

객지로 내보낸 자식들을 생각하면

이까짓 뺨 서너 대쯤이야

밥풀이나 더 붙어 있었으면

중 제 머리 못 깎아

쑥대궁 잡풀 듬성한 무덤 주위로

고추잠자리 한세상 걸머지고 넘나드는데

저기, 자식들 돌아온다

낡은 봉고차 기우뚱기우뚱

비누 참치 선물세트 주렁주렁 들고서

      

 

 

달빛기도/ 이해인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 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 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추석달/ 정희성


어제는 시래기국에서

달을 건져내며 울었다

밤새 수저로 떠낸 달이

떠내도 떠내도 남아 있다

광한전도 옥토끼도 보이지 않는

수저에 뜬 맹물달

어쩌면 내 생애 같은

국물을 한 숟갈 떠 들고

나는 낯선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보아도 보아도

숟갈을 든 채 잠든

자식의 얼굴에 달은 보이지 않고

빈 사발에 한 그릇

달이 지고 있다

 

 


한가위 날이 온다/ 천상병

 

가을이 되었으니

한가위 날이 멀지 않았소.

추석이 되면

나는 반드시

돌아간 사람들을 그리워하오.


그렇게도 사랑 깊으시던 외할머니

그렇게도 엄격하시던 아버지

순하디 순하던 어머니

요절한 조카 영준이!

지금 천국에서

기도하시겠지요.

 

 

 

추석날 아침에/ 황금찬


고향의 인정이

밤나무의 추억처럼

익어갑니다


어머님은

송편을 빚고

가을을 그릇에 담아

이웃과 동네에

꽃잎으로 돌리셨지


대추보다 붉은

감나무잎이

어머니의

추억처럼

허공에

지고 있다

 

 

 

추석 지나 저녁때/ 나태주

  

남의 집 추녀 밑에

주저앉아 생각는다

날 저물 때까지


그때는 할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어머니도 계셨는데

어머니래도 젊고 이쁜

어머니가 계셨는데


그때는 내가 바라보는

흰 구름은 눈부셨는데

풀잎에 부서지는 바람은

속살이 파랗게

떨리기도 했는데


사람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주저앉아 생각는다

달 떠 올 때까지.

출처 : 한국명시낭송클럽
글쓴이 : 이서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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