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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한 밤의 퀠트/ 김경인 본문
한 밤의 퀠트
김경인
밤이었는데, 나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누가 잠 위에 색실로 땀을 뜨나보다,
잠이 깨려면 아직 멀었는데, 누군가 커다란 밑그림 위에 바이올렛 꽃잎을 한 땀 한 땀 새기나 보다,
바늘이 꽂히는 곳마다 고여오는 보랏빛 핏내, 밤이었는데, 밤을 자고 있었는데, 여자아이가 꽃을 수놓고 있나 보다,
너는 누구니 물어보기도 전에 꽃부리가 핏줄을 쪽쪽 빨아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보다,
나는 온 몸이 따끔거려 그만 일어나고 싶은데, 여자아기가 내 젖꼭지에 꽃잎을 떨구고,
나는 아직 잠에서 깨지도 못했는데, 느닷없이 가슴팍이 좀 환해진 것도 같았는데,
너는 누구니 물어보기도 전에 가슴을 뚫고 나온 꽃대가 몸 여기저기 초록빛 도장을 콱콱 찍나보다,
잠이 깨려면 아직 멀었는데, 누가 내 몸에 씨앗을 받아내나 보다,
씨앗 떨어진 자리마다 스미는 초록 비린내, 나는 그만 꽃잎들을 털어 내고 싶은데,
이마에 화인(火印)처럼 새겨진 꽃잎 떨구고 싶은데, 밤이었는데, 나는 아직 잠을 자고 있었는데
김경인 시인/ 1972년 서울 출생. 200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한밤의 퀼트』『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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