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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나를 던지는 동안/오봉옥

시낭송행복플러스 2016. 4. 18. 09:15



나를 던지는 동안

 

   오봉옥

 

    

1

 

그대 앞에서 눈발로 흩날린다는 게

얼마나 벅찬 일인지요

혼자서 가만히 불러본다는 게,

몰래몰래 훔쳐본다는 게

얼마나 또 달뜬 일인지요.

그대만이 나를 축제로 이끌 수 있습니다

 

2

 

그대가 있어 내 운명의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그댈 보았기에 거센 바람을

거슬러 가려 했습니다

발가락이 떨어져나가는 아픔도 참고

내 가진 모든 거 버리고 뜨겁게

뜨겁게 흩날리려 했습니다.

그대의 옷깃에 머물 수 있다면

흔적도 없이 스러져가도 좋았습니다

 

3

 

그러나 나에겐 발이 없습니다

그대에게 어찌 발을 떼겠습니까

혹여 그대가 흔들린다면,

마음 졸인다며,

그대마저 아프게 된다면 그건

하늘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나에겐 발이 없습니다

나를 짓밟는 발이 있을 뿐

 

4

 

그대의 발밑에서 그저 사그라지는 순간에도 난

젖은 눈을 돌리렵니다 혹 반짝이는

눈물이 그대의 가슴을 가르며 가 박힐지 모르니까요

그 눈물알갱이가 그대를 또

오래오래 서성이게 할지 모르니까요

먼 훗날 그대 앞에는 공기방울보다 가벼운

눈발이 흩날릴 것입니다

모르지요, 그땐 그대가 순명의 자세로 서서

나를 만지게 될는지



     —『나를 만지다』(은행나무 , 2015)


오봉옥 시인/ 1961년 광주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수학했다. 1985년 창작과비평사 《16인 신작시집》에 〈내 울타리 안에서〉 외 7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89년 서사시집 《붉은산 검은피》(전2권)를 발행, 필화를 겪었다. 그동안 펴낸 시집으로 《지리산 갈대꽃》 《붉은산 검은피》(전2권) 《나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노랑》, 시선집으로 《나를 던지는 동안》 《달팽이가 사는 법》 등이 있다. 비평집으로 《시와 시조의 공과 색》 《서정주 다시 읽기》 《김수영을 읽는다》, 산문집으로 《난 월급받는 시인을 꿈꾼다》, 동화집으로 《서울에 온 어린왕자》(전2권) 등이 있다. 〈겨레말 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을 거쳐 케이블방송 ‘온북TV’에서 〈오봉옥 시인의 책치冊治〉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예지 〈문학의오늘〉 편집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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