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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즐거운 하드록/신정숙 본문
즐거운 하드록
—연대기 4
신정숙
이처럼 출생을 공포(恐怖)한 신생아는 오래 살지 못 할 것이라고 은유한, 몇 시간의 사투 끝에 나를 받아낸 산파의 경고를 무시하고 비틀비틀 나는 용케도 살아 대학생이 되었다
어리둥절한 삶의 개찰구를 통과해
서울역 광장에서 보았네,
손수건을 적시며 멀미를 짓누르며
왜 이 앞이 잔디밭이 아닌 거지
흔들리는 그네와 산책길 아름다운 공원이 아닌 거지
보았네, 견고한 탱크 같은 사각의 대우빌딩
서둘러 짐을 푼 친지의 골방에서
사각과 탱크와 자본주의를 생각하며
나는 또 뒤늦게 멀미를 해댔네
수업 시간 오분 전, we don't need know education
나는 자주 자체휴강을 선포하고
미당 선생님과 동리 선생님이 열변을 토하는 흑석동을 탈출했네
잠수교를 건너 나의 권리와 의무를 벗어났네
이국 같은 이태원의 카페 이브에 앉아
나는 마구 주인을 졸라 오, 즐거운 하드록
Boss 901 스피커를 통하여 싱어들의 목소리로 세상을 죽였네
Catch the rainbow, 무지개를 잡아라
서울 입성하여 무지개를 본 적은 꿈에도 없었지만
총 연주 시간 십오 분 사십 초,
음악의 물결 따라 청바지를 입고 콜라를 마셨네
이태원 한길가 정류장에서
버스가 올 때까지 오, 즐거운 하드록
노래를 불렀네
일 년 사이 이삿짐을 세 번이나 꾸린 친구는
이제 지쳤어, 이십대에 조로(早老)하여 자주 소식을 끊고
용돈 궁하여 문화 궁하여 서글픈 밤에는
허리 굽은 부모에게 긴 편지를 썼다가
발작처럼 찢었네, 신입생 시절 내내
오, 즐거운 하드록
대학 우체국에 앉아 교내 방송의 음악 위에 걸터앉아
그 먼 집으로 연결되는 시외전화를 신청하고
공부 열심히 하느냐, 왜 배고프냐는
아버지의 목소리, 전화를 끊고 나는 자주 울었네
배부르면 근심 없는 일차원의 문화 속에 퍼질러 앉아
Cry Baby, 아버지 이곳이 무서워요 공포예요
그렇게 제대로 말하지 못하였네
그런 날은 마구 쓸쓸했네
언제 어디서건 숨을 곳 하나 있었지
내가 나를 덮을 곳 하나 있었지
그때 모태처럼 나를 은신할 수 있는 곳은
클래식의 저 우아하고 완전한 세상이 아니라
어딘가 멈춘 것 같은, 부서진 하드록의 세상이었네
오, 즐거운 하드록
내게는 집이 없었네 서울의 불빛을 내려다보는 산꼭대기 동네
Stairway to heaven, 천국으로 가는 계단
집이, 없다, 고 또박또박 나는 내 마음을 읽었네
계단을 오르며 자주 황당한 코피를 흘렸네
그런데 대우빌딩은 왜 저리 창이 많아
딥 퍼플의 April을 네 번째 듣자 사 년은 지나가고
나는 그 때도
대우빌딩, 생각만 해도 자동멀미를 했네
더 이상 머물 집도 더 이상 나를 잡을 용기도 없었네
살아남을 수도 있었지만
살아내는 것의 공포가 그렇게 무거웠네
오블라이트로 싼 약을 열심히 먹으며
나를 비웃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내가 제일 열심히 나를 비웃었네
지금, 이 나이에 용케도 살아
내 주민등록 다행히도 말소되지 않고
오, 즐거운 하드록
출근 십오 분 전 나는 가끔 볼륨을 올려대고
대우빌딩은 그대로신가
서울 시민은 안녕하신가
내 공포는 아직도 나를 추적중이신가 잠복근무중이신가
Please, don't pass me by
도태며 번식이며 상승이며 추락이며 잡다한 것들
생각해 보면
나의 진화와 퇴화는 그 시발을 짐작키 어려운데
출근시간 빠듯해지고 오, 즐거운 하드록
그 시절 그 때는 음악 위에 자주 뜬 적 있었지만
그러나 이토록 무거운 하드록
무거워 내 어깨 자주 짓눌리네
헤비메탈 헤비멘탈
자주 나는 공포하네
—시집『즐거운 하드록』(실천문학사1997)
신정숙 / 1958년 전남 목포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렇게도 먼 지구』(1992년, 청하),『즐거운 하드록』(1997년,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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