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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아름다운 시편들 (730)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제17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김종숙/시] 요동치던 밥솥에 뜸이 들고 솥뚜껑을 열면 거기 너무도 고요해진, 반듯한 밥알들 끓어 넘치고 치솟던 설익은 시간이 지나고 잦아든 잘 지어진 밥 까칠한 쌀알들이 반지르르한 한솥밥이 되기까지 가령, 몇억 년 동안 쌓인 사막의 무늬들이나 물에 씻긴 돌의 생김새 같은 저의 격렬을 저도 종잡지 못한 일을 따라 했을 뿐이다 또는, 반듯한 간격을 맞추어 파랗게 자란 벼포기들이 탈곡이 되고 같은 자루에 동량으로 담기는 동안 바르르 떨다 잠잠해진 저울의 바늘이 함께 들어 있어 더도 덜도 없는 정량, 들쭉날쭉 흐트러진 적이 없다 흔들릴 만큼 흔들린 벼 포기들 털릴 만큼 털려 본 낟알들 갈 만큼 다 걸어가 보고야 능숙하게 제 길을 가거나 돌아오는 답습처럼 그 뒤끝은 저렇게 결..
▲ 표제·일러스트=주한경 눈사람 한쪽 눈이 삐뚤게 붙어 있다 돌멩이 하나 머금었다 지금 조금씩 녹고 있는데 눈두덩이가 시릴 만큼 너를 오래 붙잡고 싶어 미안하지만 나는 점점 온기를 갖고 안타깝지만 너는 점점 부피를 줄이고 한동안 우린 밀착된 결빙으로 중력을 버티지 눈송이들 모여 숨겨둔 방 이곳은 해의 꼬리가 닿지 않아 심장을 두기 좋지 두근대는 돌멩이가 감정이라면 겨울은 안전한 밀실이야 사람들은 그저 눈빛을 얹어주거나 손끝으로 훑어볼 뿐 녹아내려야 하는 운명엔 관심이 없지 내가 너를 지키는 방법은 구름을 불러 모으는 일 눈이 자꾸 짓물러지고 있어 눈 속에 갇힌 마음이 죄다 흘러내리고 있어 우리가 견뎌야 했던 것들을 생각해 처음 눈덩이 궁글렸을 때의 설렘 같은 거 아이들 모두 돌아간 뒤 입꼬리를 움직여본 ..
숲을 떠난 푸른빛의 기억이 갇힌 방으로 들어간다 형광등 불에 달궈진 자갈과 모래알들이 바닥에 깔리어 전갈이 지나는 길을 만들고 있다 마른 바람이 눈에 익거나 때로는 낯선 발자국들을 지우는 한낮에는 미세한 먹이사슬들이 잠깐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하얗다 종일 내리쬐는 빛은 벽에 박힌 나무들의 뿌리와 그걸 바라보는 죽은 새들의 밥상과 좁은 틈새를 뚫고 머리를 든 작은 벌레들의 핏줄까지 하얗게 만든다 한번이라도 불빛에 닿은 것들은 제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오후가 저물 때면 변색의 관성은 더욱 강해져 누구도 아침을 기억하지 못한다 방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나갈 수 없다 아무렇게 발을 들여 놓았다가 깊은 사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풍에 갇히어 돌아설 수 없다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
아버지는 목수였다 팔뚝의 물관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나무는 해저를 걷던 뿌리를 생각했다. 말수 적은 아버지가 나무에 박히고 있었다. 나무와 나는 수많은 못질의 향방을 읽는다 콘크리트에 박히는 못의 환희를 떠올리면 불의 나라가 근처였다. 쇠못은 고달픈 공성의 날들. 당신의 여정을 기억한다. 아버지 못은 나무못. 나무의 빈 곳을 나무로 채우는 일은 어린 내게 시시해 보였다. 뭉툭한 모서리가 버려진 나무들을 데려와 숲이 되었다. 당신은 나무의 깊은 풍경으로 걸어갔다. 내 콧수염이 무성해질 때까지 숲도 그렇게 무성해졌다. 누군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박히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 빈 곳은 신의 거처였고 나의 씨앗이었다. 그는 한 손만으로 신을 옮기는 사람 나무는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당신에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