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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아름다운 시편들 (730)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비 오는 날의 스페인 - 이신율리 비 오는 날의 스페인 이신율리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 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 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 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리는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슬픈 시를 쓰려고 배고프다, 썼는데 배으다라 써졌다 뒤에 커서를 놓고 백스페이스키를 누르자 정말 배가 고팠다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렸나? 배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고프다, 쓰자 배가 없어졌다. 등이 구부러지는, 굴절된 뼈 같은 오후 그래, 슬픔은 늘 고프지 어딘가가 고파지면 소리 내어 울자, 종이 위에 옮겼다 * 세면대 위에 틀니를 내려놓듯 덜컥, 울음 한마디 내려놓고 왔습니다 그뿐인가 했더니 옆구리 어디쯤에 쭈그리고 있던 마음, 굴절되어 있네요 거품을 집어삼킵니다 씹어도 건더기라곤 없는 튀밥 혓바닥이 마르고, 버썩거립니다 그래요, 뭐든 버썩거릴 때가 있어요 잠깐 눈 돌리면 쏟아지기도 하고… 난 수년 전 아이 몇몇 쏟아버린 적도 있어요 그땐 내 몸도 깡그리 쏟아졌던 것 같아요 마지막 손톱을 파낼 땐 눈에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당선소감 시 괜히 글 쓰고, 괜히 혼자 여행하고… 괜히 그랬다 싶은 일들이 시가 됐다 채윤희 씨당선 연락을 받았다. “엄마!” 비명을 지르며 따뜻한 품을 끌어안았다. 엉엉 울기에 이상적인 순간이었고 거의 그럴 뻔했다. 그러나 끓는 물에 들어간 지 10분을 훌쩍 넘긴 파스타를 걱정하는 마음이 울컥 치미는 마음을 기어코 짓눌렀다. 퉁퉁 불어버린 파스타를 소스가 담긴 팬으로 옮겨 담았다. “어휴, 비명이 들리기에 사실 벌레가 나온 줄 알았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우가 그릇마다 세 마리씩 배분되었는지 살폈다. 지금 새우가 문제인가. 그러나 새우가 문제이기는 했다. 내가 네 마리를 먹으면 누군가는 두 마리를 먹게 될 테니까. 회심의 파스타였는데..
〈왜소행성 134340〉* 우주는 조금씩 부풀고 있고 우리는 같은 간격으로 서로 멀어지고 있어요 사방이 우주만큼 트여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 좌표만 같은 비율로 커지는 세계에서 시간만이 변수라고 한다면 아득한 게 쓸쓸한 일이 되고 맙니다 다시 올 것 같지 않게 멀어지다가 어느 계절엔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별을 찌그러진 궤도를 가진 별을 사람들은 무리에서 내쫓았습니다 이로써 우리 행성계는 완벽하게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공전 주기를 늦추고 싶은 사람들은 서둘러 여행을 떠나지만 매진 행렬이 더 빠르게 이어지고 출발을 위한 서류는 늘어납니다 서류가 늘어날수록 안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거기 여기의 세계에서 서류는 잠식하는 불안처럼 불어납니다 모든 항의에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답변이 준비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