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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신작 노트/신동옥 본문
시작 노트
신동옥
어린 시절, 철로에 앉아 해바라기하곤 했지.
녹아내리는 부젓가락처럼 뻗어가는 레일 위에
구슬이며 동전을 올려두고 엎디어 기차를 기다렸어.
불꽃이 지나간 자리마다 눌어붙은 유리와 쇠
뭉개져 형체를 잃은, 도무지 기원을 짐작할 수없는
문양을 긁어내 만질만질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녔지.
먼 길을 돌아 그곳에 다시 서보니 역 광장은 손바닥만하고
침목 아래 자갈밭으로는 이름 모를 풀이 무성하더군.
역시 가장 좋은 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나는 바랐지. 아버지들이 짐승을 만 마리쯤 죽이고 피를 마신 도살자이기를
그 피가 내 몸뚱이를 가득 채우고 흐르는 양을 문장이 견디어주기를……
역시 가장 좋은 아버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
못다 쓴 마침표, 줄임표, 구두점 들 모두 모아서
그것들 마치 씨앗이라도 되는 양 파종하고 나면
행간에는 또 무슨 꽃 피어 벌 나비를 불러 모을까?
온순한 새와 달팽이를 노래하는 꽃망울에 대해 쓰렸는데
줄곧 비밀과 허방에 대해 썼다.
역시 가장 좋은 시는 아직 쓰지 않은 시.
여태껏 내가 지은 빈집에 들어앉아 곱은 손을 녹여가며
밤새 뒤척이는 여린 것들 손을 잡고 조용히 미쳐가는
이제는 저 행간보다 내 마당이 더 따뜻해 보인다.
그러니 꿈꾸지 마라, 다른 세상은 없다.
이파리에 아가리를 숨기고 날개에 꼬리를 물고
나비는 빛 속에서 태어나고 뱀은 그 빛을 되삼킨다.
—《시인시대》2017년 가을호
신동옥 / 1977년 전남 고흥 출생. 2001년《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악공, 아나키스트 기타』『웃고 춤추고 여름하라』『고래가 되는 꿈』, 산문집『서정적 게으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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