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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440)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나무를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외 4편) 이윤설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나무 잎을 따 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로 먹기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잡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거렸어요 한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 같아서 뼈째 씹어야 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 씹을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 있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노혜진 예순두 살에 뽀얀 속살입니다 시야각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 벗고 만날 수 있고 온몸을 훑고도 괜찮아요 엄마는 때수건과 우유를 손에 들고 옵니다 우리는 깨끗해집니다 두꺼운 발톱과 무좀을 병이라 부릅니다 탕의 수증기는 소리와 이야기를 불러 모읍니다 "그 발톱으로 네일 숍에 왔대" 동료들이 웃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엄마 얘기만 합니다 아빠 얘기만 하는 동료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없니?" 질문은 되돌려집니다 알고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동료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아차 하면서 재채기처럼 웃었습니다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만큼 웃음거리들이 쉽게 배어나오는 회사입니다 제가 오늘 재채기를 했던가요 바디 클롄저에서 수영장 냄새가 납니다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이..
바람의 무늬 (외 2편) 이태수 봄 같지 않게 스산한 날 떨어지며 흩날리는 벚꽃들을 바라본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면 이른 봄날 내리던 눈송이들로 보인다 창밖에 바람 불고 있듯이 가슴에도 써늘한 바람이 불어서일까 창유리 저쪽같이 이쪽도 유리알같이 투명하게 아픈 바람무늬들 풍란이 나를 넌지시 본다 무명無明 길 산 넘으면 산이, 강을 건너면 강이 기다린다 안개 마을 지나면 또 안개 마을이, 악몽 벗어나면 또 다른 악몽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이 잠자도 깨어나도 산 첩첩 물 중중, 아무리 가도 제자리걸음이다 눈을 들면 먼 허공, 그래도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 안개 헤치며 마을을 지나 마을로 악몽을 떨치면서 걸어간다 무명 길을 간다 잠깐 꾸는 꿈같이 담담해지고 싶다 말은 담박하게 삭이고 물..
남향 南向 (외 1편) 이문재 그땐 그 사람이 남쪽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한 문장이 정남향이었습니다 덕분에 한 시절 잘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봄이 이듬해 봄 만나기를 서른 몇 차례 많은 시대가 한꺼번에 왔다가 사라졌습니다 오래된 미래는 더 오래가 되었고 온다던 미래는 순식간 지나가 버렸습니다 꽃 진 자리에서 하늘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남쪽일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어느 생에게 정남진일 수 있을까요 그때는 여기저기 남쪽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함께 남쪽을 바라보던 착하되 강하고 예민하되 늠름한 벗들이 도처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그랬습니다 남쪽은 저기 여전히 맑고 푸르러 드높은데 이 겨울이 봄여름가을을 건너뛰어 다음의 긴 겨울을 만나고 있습니다 처음처럼 처음 같은 마지막처럼 전환 학교 우리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