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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440)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오막살이 집 한 채 장석남 나의 가슴이 요정도로만 떨려서는 아무것도 흔들 수 없 지만 저렇게 멀리 있는, 저녁빛 받는 연(蓮) 잎이라든가 어 둠에 박혀오는 별이라든가 하는 건 떨게 할 수 있으니 내려 가는 물소리를 붙잡고서 같이 집이나 한채 짓자고 앉아 있 는 밤입니다 떨림 속에 집이 한 채 앉으면 시라고 해야 할 지 사원이라 해야 할지 꽃이라 해야 할지 아님 당신이라 해 야 할지 여전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나의 가슴이 이렇게 떨리지만 떨게 할 수 있는 것은 멀고 멀군요 이 떨림이 멈추기 전에 그 속에 집을 한 채 앉히는 일이 내 평생의 일인 줄 누가 알까요 ㅡ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 , (창비, 2010) 장석남 시인/ 1965년 인천 덕적에서 출생하여 인하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현재 한양여대 ..
[2021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냄비의 귀 / 장이소 뜨거운 냄비의 귀를 잡다가 내 귀를 잡았다 순간이 순간에 닿는다 귀 하나 떨어진 양은냄비를 안고 골목을 지난다 삼삼오오, 얼룩이를 가리킨다 얼룩이는 번쩍번쩍 얼룩덜룩하다 고흐는 왼쪽 귀를 자르고 왼쪽으로 들었을까, 어떻게 오른쪽을 들었을까 당신은 떨어진 귀를 버리지 못한 사람 뚜껑을 마저 잃고 배가 된 사람 이마는 당신이 키우던 물고기 떨어진 귀는 물고기의 어디쯤일까 귀를 기울인다 귀는 기울기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자른다 어디나 그런 귀 하나쯤 있다 절반이 절반에 매달려 가운데를 안고 돌면 떨어진 한쪽을 위해 두 배속 태엽을 감는다 꼬리에 풀리는 물무늬 아가미로 쏟아지는 물살 삼킨 것들이 중심을 세운다 멱을 잡고 중심을 도는 것은 붙잡지 못..
[2021 전남매일 신춘 시 당선작] 개미들의 천국 현이령 아버지가 아침 일찍 공원 숲으로 간다. 노란 조끼를 입고서, 숲이 아닌 것들은 모두 줍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 아버지와 아버지 사이 쓰레기를 줍다가 잘못 건드린 개미집에서 후드득 쏟아져 나오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버지를 물고 개미는 개미를 물고 이끼처럼 들러붙어 저녁을 먹는 우리 집. 아버지의 집에는 아버지도 모르는 집들이 많아. 나는 개미처럼 더듬이가 자라고 발로 툭 치면 무너져 내리는 불안들. 바닥을 잘 더듬는 내력이 우리의 유전자에 있지만 나는 한낮에도 까만 개미가 무섭다. 땅바닥을 쳐다보다 땅이 되는 게 꿈인 아버지가 떵떵거리지 못하는 건 기우뚱한 어깨 때문. 개미는 개미에게 의지하고 의지는 의지에 기대고 아버지의 몸을 기어 다니는 수많은..
▲ 일러스트·표제=주한경 파란 동그라미를 그려요 당신은 호수인 줄 알고 뛰어들어요 팔랑팔랑 헤엄쳐요 바다처럼 넓고 깊어요 파란 동그라미 속의 당신이 파랗게 물들고 나를 찾아봐, 하는 목소리에 물이 뚝뚝 떨어져요 안 보여요 안 보인다니까요 여기 있어, 하는 목소리에 숨이 헉헉 차오르네요 파란 동그라미 위에 파란색을 더해요 내게는 다른 색이 없거든요 조금 다른 파란색이면 당신을 찾을지도 몰라요 몰랐어요 더 깊어질 뿐이라는 걸 바닥을 찾지 못할 거예요 하늘을 찾지 못할 거예요 파란 지구별에서 나갈 수 없듯 당신은 거기서 허우적거리겠죠 파란 동그라미 파란 동그라미 블루칩 같기도 하고 버튼 같기도 해요 속는 셈 치고 한번 눌러 볼까요? 잭팟이 터질까요, 당신이 튀어 오를까요? 하나, 둘, 셋! 아, 물감이 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