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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옥수수가 익어갑니다 변희수 내가 여름을 다 말해버리면 옥수수는 익지 않는다 촘촘한 치아가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매미 울음이 어금니에 박혀 빠지지 않는다 뭉개어지고 으깨어지는 말들 입속이 붐비면 처진 어깨를 조금 흔들어 보이거나 으쓱거려본다 치아와 치아 사이에 거웃처럼 비밀이 자란다 혀를 길게 빼문 한낮의 발설에 귀를 기울이던 바람이 천천히 수염을 쓸어내린다 태양의 내란과 음모를 기억하던 여름이 벌어진 입을 조금씩 다문다 단전을 끌어올려 이빨 사이로 스,스,스 날숨을 뱉어본다 독 오른 뱀이 산으로 올라가고 당신이 잘 볶은 옥수수차를 말없이 내놓던 일 근자에, 더 좋은 일은 없었습니다 옥수수는 이미 무량무량 익었습니다 ⸻계간 《문파》 2020년 겨울호 ----------------- 변희수 / 1963년 경남..
푸른 해 김영산 푸른 해 푸른 해 라고 부르면 푸른 해가 된다 너도 푸른 해 나도 푸른 해 우리 모두 푸른 해 푸른 해 푸른 해 하고 부르지 않아도 푸른 해가 된다 푸른 해라고 부르지 않아도 푸른 해 분명한 사건 하나는 우리가 푸른 해 사건 하나는 사건 둘 사건 셋 푸른 해 하나가 생기면 푸른 해 여럿이 그 주위를 돌고 돈다 우리는 푸른 해 주위를 돌고 돈다 하나의 사건이 생겨나는 것처럼 푸른 해가 생겨나는 것처럼 푸른 해가 생겨나고 그 푸른 해 주위를 푸른 해들이 돌고 돈다 ⸻월간 《현대시》 2021년 2월호 ------------------ 김영산 / 1963년 전남 나주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박사 수료. 1990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冬至』 『평일』 『벽화』 『게임..
부흥이 우는 밤 이준관 돌이끼 푸른 성 터를 끼고 돌아 호랑거미 거미줄 타고 내려오고 달빛에 주둥이 흐늘히 젖어 부흥이 우는 밤이 있었다 개들이 짖어 대면 별이 떨어졌다 개의 귀에 대고 무슨 소리가 들려올까 들어보면 나의 귓속엔 푸른 별들이 가득 찼다 아랫녘 마을의 불빛들은 도토리열매처럼 열려 깨물면 떫은 맛이 들었다 나는 우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우물은 늙은 노새처럼 슬픈 눈을 가졌다 기다림에 지친 성터의 돌들을 주워 손에 쥐면 그대로 소리 없이 바스라져 버렸다 꽃 속에 숨은 두근거리는 천둥의 심장 죄 지은 듯 그 꽃잎 따먹고 나는 그리움을 지녔다 서러운 해오라기의 긴 모가지를…… 이준관/1949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 전주교대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1..